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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 저녁
한시간 반정도 지났을까, 부산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이동하기 위해 마린씨티까지 가는 급행 버스를 타려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탈 수가 없었다. 아쉬운대로 지하철을 탔고, 한화콘도에서 가장 가깝다는(-그래봤자 걸어서 15분은 족히 걸리는 위치이지만) 동백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보이는 어찌나 달이 탐스럽고 아름답던지.
부랴부랴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흔치않은 샌드위치 연휴였기 때문에 방을 못 구할까 했었는데 겨우 대기번호 마지막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한화콘도 호텔식 룸은 처음이용해본다. 음, 원룸식으로 되어있구나. 패밀리룸처럼 욕조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욕조가 없어서 아쉬웠다. LUSH 버블입욕제까지 가져갔었는데 말이야.
부산의 밤은 아름답다.
나는 사실 이 다리를 꽤 운치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나이가 중년쯤 되시는 부산토박이분들은(- 우리 아빠처럼) 이 다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더라. 관광객들이 보기에야 뭐, 화려하고 번쩍거리니 눈요깃거리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바다를 보고 자란, 말그대로 부산싸나이인 분들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막는 이 구조물이 꽤나 거슬린다고 생각하셨나보다. 막 다리를 증축할 때즈음 공항으로 오고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아쉬운 말씀을 나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교통이야 뭐 편리해졌다고 말씀하긴 하시더만은- 그 어떤 조명이 어린 소년의 맑은 동공에 비춘 망망대해의 모습보다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혹자는 바다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 가치를 찾더마는, 아빠 마음 속의 바다는 이미 변한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아마 저 다리하나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빼앗긴 기분이 드셨던게 아닐까.
그래도 내게 부산 밤바다는 꽤나 아름답다. 버스커버스커는 여수의 밤바다로 노래를 만들었지만, 사실 난 여수의 바다보다 부산의 바다가 더 아름답다. 여수의 바다보다 덜 밝고 운치있으며 시야가 더 트여있어서 좋다. 여수는 뭔가 바다가 '강'같다면, 부산은 정말 바다답달까.
해안가를 따라걸으며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중학교적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장장 두시간이나 통화를 했는데, 주 토픽은 '연애'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20대 후반의 연애'. 그리고 나이든 내게 그는 왜이렇게 바보같은 연애를 해왔냐며 꾸지람을 했다. 그리고 난 그에 대해,
'응? 글쎄. 나는 어떡하지? 하하하 하하하하하'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어떻게 할지를 몰라 계속 이 대답을 반복했다. 하하 거의 한달이 다 지난 지금에 와서도 또 그렇네. 정말 나는 어떡하지? 하하하 하하하하
그리고 해운대에서 잠깐 들렀던 Thursday Party는 정말 별로였다. 외국인은 다른 TP만큼 많았지만 노래가 너무 별로여서 금세 나와버렸다. 홍대의 TP보다 훨씬 나빴다. AW, 바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외국인은 해운대 해변 바로 앞에서 산다고 그랬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바다로 달려나가 수영도 하고, 페들링도 한다고 했다. 그건 좀 부러웠다. 회사에서 숙소도 다 대준다고 했다. 그래, 좀 많이 부러웠다.
여튼, 바에서 나와 해변이나 걸으며 대화하자고 하는 것을 너무 늦었다고 핑계를 대며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를 두 캔샀다. 방에서 밤바다를 보며 기네스를 한 캔 마셨고 피곤한 다리를 벽에 기대고 또 다시 오랜 통화를 했다. 휴, 이 날은 정말 여러 사람과 통화를 많이한 날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니 통화할 일이 많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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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2
전날 늦게 잤는데도 불구하고, 칼같이 아침에 눈이 떠졌다. 오랜만에 알몸으로 자서 그랬나, 약간 감기기운이 생긴 기분이었다. 뭐 그닥 심하진 않아서 바로 조식을 먹으러갔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서 곧 후회했다. 이렇게 먹을게 없었었나 싶었다. 그냥 근처 카페에서 샐러드나 하나 시킬걸 그랬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테라스 카페에서 먹을 걸.
식사를 다 하고 오늘은 부모님이 여행에 합류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룸체인지를 신청했다. 패밀리룸은 같은 가격에 방도 하나 딸려있어서 여럿이 생활하기에 훨씬 편리하다. 엘레베이터에서 왼쪽으로 떨어진 룸이라 전날 방보다 뷰도 훨씬 좋았다.
짐을 대강 풀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점심도 먹으러 남포동까지 갈거다. 해운대 바다의 파노라마샷.
지하철로 장장 50분이나 걸려서 남포동에 도착했다. 아빠가 그렇게 내가 어릴 적부터 추천하셨던 완당을 드디어 먹어보기로 했다. 붐비는 BIFF거리를 보며 부산은 좌판이나 시장이 활성화 되어있어서 참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그 전통의 완당집! 아빠의 40년 단골집이다.
점심때를 한참 지났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웨이팅이 두 팀정도 있어서 놀랐다. 그치만 일행이 없는지라 다행이 금세 앉아서 식사할 수 있었다.
완당은 저렇게 얇은 만두피에 고기소가 조금 들어있는 부드러운 만두같은 음식인데 입안에 마치 금붕어를 넣은 것 마냥 부드러웠다. 국물은 일반적인 우동 국물맛이다.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4천원정도면 간단히 요기하며 많이 사먹을 것 같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느껴졌다. 글쎄, 겨울 아니고서는 다시 찾아먹을 맛집은 아닌 것 같다.
완당을 다 먹고 저번 부산 계모임 여행때 차마 맛보지 못했던 비빔당면을 먹으러 깡통시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너무 배가 불렀지만 꼭 먹고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위장의 용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장 초입에서 발견한 호박식혜. 노오란 색깔이 예뻐서 샀다. 별로 달지도 않아 맛좋더라.
비빔당면으로 유명한 호림분식에 도착했다. 줄이 굉장히 길었는데, 나는 또 혼자여서 순서가 와도 안에 앉을 수가 없었다. 흐응, 합석해도 괜찮았는데. 배도 별로 안 고프고, 시간도 많고 그냥 바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덕분에 사람구경 잘했다.
비빔당면도 있고 비빔국수도 있는데, 이렇게 이모 앞에 있는 단무지, 어묵, 시금치 등의 고명 위에 양념을 끼얹어 나오는 음식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부산 비빔당면에 대한 호불호가 상당하던데, 맛없다고 하는 곳들은 사진을 보니 그냥 시금치에 당면, 양념만 비벼먹도록 나오더라. 그러니 맛이 없지.
하지만 여기 비빔당면은 달랐다. 원조급이었다. 진짜, 진짜진짜진짜 맛있었다. 이번 부산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베스트였다.
하지만 약간 매움하니 매운걸 잘 못 드시는 분들은 조심!
배부른 와중에도 비빔당면을 후루룩 비우고 시장구경을 다녔다. 그러다 자라를 만났다. 세상에. 진짜 자라다. 저 애기를 어떻게 해먹나......??? 또르르..
그리고 시장 끄트머리에서 만난 수수부꾸미! 수수부꾸미는 사실 나도 처음 들어본 음식인데, 네이버 매거진을 보고 알게되었다. 팬에 메밀반죽을 얇게 부치고 그 안에 달콤한 팥 앙꼬를 넣는 따끈한 떡이다. 비록 너무 배가 불러 포장을 해왔지만, 식어도 고소하고 달큰한 것이 참 맛있더라. 이름처럼 수수한 맛이었다. 5개에 3000원.
시장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도, 버스 디자인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참 정겹다.
심지어 사람까지 정겹다. 버스가 도착했을때 사진을 찍다가 기사아저씨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갑자기 엄지를 척 올리시며 포즈를 취해주셨다. 저 까만 썬글라스에 흰 유니폼도, 단정히 끼신 두 손의 면장갑도 참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마 저 아저씨는 내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셨겠지. 하하.
여차저차 버스를 타고 숙소에 들어와 한숨 눈을 부쳤더니 엄마가 도착하셨다. 엄마와 함께 저녁으로 해운대 시장에서 막회를 쳐먹고 청하를 4병이나 마셨다.
술잔을 한 잔 두 잔 기울이며 조금은 무겁게 내 요즘의 고민을 슬그머니 털어놓았는데, 엄마는 거기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내려주셨다. 사실 내 고민에 대해서는 엄마보다 친구와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는 편인데, 아무리 나와 가까운 친구와 대화을 해도, 부모님과 상담하는 것만큼 통쾌할 때가 없다. 이게 세월의 깊이라는 거구나, 하고 느끼며 나도 이런 중년으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의 지혜로움에 나는 또 다시 감탄했다. 그 깊이가 정말 경의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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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3
부산의 마지막날
-은 비가 왔다. 부산의 바다는 비가 오니 더 운치있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해안도로의 커피숍에 앉아 잔잔한 빗소리와 그 사이 조금은 거친 파도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영상을 여러개 찍었다. 아이폰은 영상 녹화가 참 잘 된다. 소리 녹음도 깨끗하게 잘 되서 정말 좋다.
커피를 다 마시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부산을 떠나는 기차를 타기 전, 역에서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무슨 유명한 선수들의 격투기인지, 이렇게 티비 앞에 주르르 앉아있는 광경은 인도에서 말곤 처음이다. 마치 70년대 흑백티비가 처음 나왔을 때, 동네사람들이 티비 앞에 오밀조밀 앉아 토요명화를 시청하는 모습같아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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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2시간 반이 지나, 서울역.
기차를 내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무엇을 위한 눈물인지 무슨 감정에서 비롯된 눈물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기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 줄을 기다리는데, 내 앞의 웬 꼬마가 들고있는 팅커벨 인형의 모습이 왠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날 수 있는데 날 수 없음의 모순.
그냥 그런 모순.
그냥 그런 생각.
그렇게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꿈은 꿀 때는 좋은데, 깨고나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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